한국스포츠교육개발원 전통무예 연구소NEWS

기창[騎槍]..365 무예도보통지

무예도보통지 마상기창

기창[騎槍]..365 무예도보통지..대한민국 전통무예

오늘날의 창제에 의하면 기창은 길이가 15척으로, 보장창 (步長 槍)과 같다.
오예의(五禮儀)에의하면, 창(槍)은 삼모창 이다. 지금 제도에 창 자루는 길이가 10척 이며 검은 칠을 한다.

붉은 칼날의 길이가  1척 5촌이며 끝이 예리하며 양 면에 날이 있고 아래에는 가리는 철과 둥글고 예리한 끝이 있 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 이르기를 숙종 32년 ( 一七0六) 삼갑사(三甲射)를 파하고 대신 기창 교전(騎槍交戰)의 법을 두었다.

관무재(觀武才)및 중순시(中旬試)에 기창(騎槍)은 2인이 교전(交戰)을 세번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말을 타고 나간 뒤 두 손으로 창을 잡고 높이 쳐들어서 왼쪽 겨드 랑이에 끼었다가 즉시 돌려 오른쪽 겨드랑이에 낀다.

제일 허수아비 는 정면으로 찌르고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제이 허수아비를 찌른다. 또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제삼 허수아비에 다가가서 찌른다.

찌르 기를 마치면 몸을 뒤집어 왼편을 돌아보고 창으로 뒤를 가르킨다. 오 른편도 또한 이와같이 한다. 그리고 창을 끌고 되돌아 말이 나가던 곳 으로 돌아온다.

세 허수아비는 각각 25 보(步) 떨어져 있게 한다. 창은 길이가 15척 5촌이다.

무예도보통지 마상기창

경국대전에 실려 있는 즉 무과시취제(武 科試取制)와 지금의 예보(藝)에 실려있는 기창(槍)은 다르나 역시 치고 찌르는 자세를 갖추었다. 이때문에 여기 같이 기록한다.

그러 나 그 무게가 30근(斤)으로 무사들이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하였 다.


무비지(武備志)에 이르기를 “창(槍)은 옛날의 세모난 창이 다.” 석명 (釋名)에 이르기를”세모난 창 (矛)이 길이가 8척이 되는 것을 삭 이라 하는 데 마상(馬上)에서 지닌다.”무편(武)에 위지경덕 (尉遲敬德) 위지는 공(恭)의 자이다. 당(唐) 나라 선양(陽) 사람이며 악국공이다.이 긴창을 잘 피하였다. 또 적의 긴 창을 빼앗아서 도리어 찔렀다. 제왕원길(王元吉)당 고조(高祖)의 아들이다. 이 또한 말타고 긴 창을 잘 썼다. 경덕 (敬德)이 긴창을 잘 쓴다는 소문을 듣고 가벼이 보고 친히 시험코자 하여 긴 창날을 거두어 치우고 막대기로 서로 찌르도록 명하였다. 경 덕이 창을 제거하지 말아 달라고 청하였다. 경덕의 창이 겨우 창날을 물리쳤다. 원길은 적중시킬 수 없었다.

태종(太宗)이 묻기를”긴 창을 빼앗는 것과 피하는 것이 어느 것이 어렵고 어느 것이 쉬 운가?”

대답하기를

“창을 빼앗는 것이 어렵습니다.”이에 경덕에게 원길의 창을 빼앗아 보라고 영을 내렸다. 경덕이 조금 후에 그 창을 세번이나 빼앗았다.

설문에 이르기를

“삭(樂)은 모이다. 또한 삭으로도 쓴다” 고 하였다.

마삭보(馬樂譜)에 이르기를“마삭(馬)이 쓰게된 것은 비록 오래된 법(法)은 아닐지라도 근대 에 전해져서 이미 조금 기예를 이루었다.

무예도보통지 마상기창

정의

기병()이 쓰는 긴 창 또는 조선 시대에 무과 과목의 하나로 말을 타고 창술을 펼치는 무예.

개설

기병()이 쓰는 긴 창 또는 조선 시대에 무과 과목의 하나로 말을 타고 창술을 펼치는 무예

연원 및 변천

기창은 삼국시대부터 널리 사용된 창이다. 고구려의 안학3호분 벽화와 삼실총 벽화에는 고구려의 기마무사가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고구려의 기마무사는 자루가 긴 장창을 들고 싸웠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기창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면 기창은 말을 타고 창술을 행하는 무예라고 해서 일명 마창‘마창’이라고 했다. 기창을 중요시한 까닭은 ‘기사가 무예를 익히는 데에는 창을 쓰는 것이 제일이다’라 하여 마상에서 연마하는 무예 중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말을 타고 달리면서 두 손을 이용하여 긴 창을 자유롭게 휘두르거나 목표물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창은 마상에서 접근전을 펼 때에 매우 중요한 무예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기병술 가운데 기마교전에 대비한 무예체계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기창은 1397년부터 무과의 시험과목으로도 활용되었다. 이후 1411년에는 꼴로 만든 허수아비를 맞히는 방식에서 기창을 사용하여 두 명이 대결하는 갑을창제를 실시되었고, 1460년(세조 6)에는 삼갑창 제도가 시행되었다. 삼갑창삼갑창은 바로 기창 교전에 대비한 실전용 마상무예의 하나였다.

한편 이후 기창은 임진왜란때 실전에서 위력을 보였던 명나라의 낭선기창장창당파죽창단병무기 등을 도입되어 조선의 실정에 맞도록 개량했고, 병사들의 창술 훈련도 체계화하여 무기체계에 변화를 꾀하였다. 이는 정조 때에 무예도보통지『무예도보통지』의 발간으로 완성되었다.

구조 및 형태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기창의 길이는 15자() 5치(), 무게는 30근이다.

기창교전보(騎槍交戰譜)

두 사람이 같이 말을 세우고 갑(甲)이 먼저 말을 풀어서 150보(步) 정도 갔다가 되돌려 오면 을(乙)이 말을 달려 서로 만나 창을 들어 한번 부딪치고 각각 오른편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오른편을 한번 돌아 보고 바꾸어 제자리로 돌아 가라.

다시 말을 달려 서로 부딪치고 하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세번 거듭한다.

갑이 을을 쫓아서 서로 싸 우다가 지는 사람은 잡히거나 혹은 묶이거나 혹은 말을 끼고 몰아 제 자리로 돌아간다.

(增) 心齊兩人並立馬甲先縱馬至百五十步許回馬乙縱馬相 遇舉槍一撞 各從右戛過右顧換至原地復縱馬相遇如是者三次甲逐乙相戰不 勝者被擒或縛或腋馳馬回原地

武藝圖譜通志諺解

[原] 처음의 ᄆᆞᆯ이 나갈 제 右手로 곳비ᄅᆞᆯ 잡고 왼 편 녑ᄒᆡ 槍을 ᄭᅵ고 新月上天勢ᄅᆞᆯ ᄒᆞ고

右手로 앏흘 잡고 左手로 뒤흘 잡아 니마의 디나게 놉히 들어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左前一刺勢ᄅᆞᆯ ᄒᆞ고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右前一刺勢ᄅᆞᆯ ᄒᆞ고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左後一刺勢ᄅᆞᆯ ᄒᆞ고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右前一刺勢ᄅᆞᆯ ᄒᆞ고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左前一刺勢ᄅᆞᆯ ᄒᆞ고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右後一刺心齊勢ᄅᆞᆯ ᄒᆞ고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左前一刺勢ᄅᆞᆯ ᄒᆞ고

左右手ᄅᆞᆯ 밧고아 잡아 右前一刺勢ᄅᆞᆯ ᄒᆞ고 인ᄒᆞ야 弄槍勢ᄅᆞᆯ ᄒᆞ야

올흔 편 안흐로 ᄒᆞᆫ 번 두루고 왼 편 안흐로 ᄒᆞᆫ 번 둘너 이ᄀᆞ치 ᄒᆞ기ᄅᆞᆯ 졍수 업시 ᄒᆞ라

騎槍交戰譜

[增] 두 사ᄅᆞᆷ이 ᄆᆞᆯ을 ᄀᆞᆲ셰오고 甲이 몬져 ᄆᆞᆯ을 노하 百五十步 즈음에 니ᄅᆞ러 ᄆᆞᆯ을 도로혀면

乙이 ᄆᆞᆯ을 노하 서ᄅᆞ 만나 槍을 들어 ᄒᆞᆫ 번 다 잇고

각각 올흔 편으로 조차 스쳐 디나 올흔 편을 도라보며 밧고아 原地의 니ᄅᆞ러 다시 ᄆᆞᆯ을 노하 서ᄅᆞ 만나

이ᄀᆞ치 ᄒᆞ기ᄅᆞᆯ 세 번 ᄒᆞ고 甲이 乙을 ᄶᅩ차 서ᄅᆞ 싸호다가

이긔디 못ᄒᆞᄂᆞᆫ이 잡히임을 닙어 或 ᄆᆡ며 或 ᄭᅧ ᄆᆞᆯ을 ᄃᆞᆯ녀 原地로 도라가라

武藝圖譜通志諺解 한글 출처 어듸메

©한국스포츠교육개발원전통무예연구소NEWS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